요즘은 룸메인 기르에메랑 자주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처음에는 독일어를 너무 잘해서 당연히 독일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브라질, 일본 혼혈이고 브라질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독일에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지내고 있는 나를 잘 이해해주고, 가끔 내가 방에 가만히 있으면 밥은 잘 먹었는지 내 방 앞에 찾아와 안부를 물어보곤 했다.
하루는 내가 볶음밥을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기르에메가 어슬렁거리길래 내가 한국 음식 해주겠다며 당당하게 제안했다가 당근이 안 익어서 샐러드 느낌의 볶음밥을 먹은 적도 있었다.
안 익은 당근은 정말이지…맛이 없었다. 그래서 장난으로 ‘당근은 네가 다 먹어도 괜찮아’라고 했는데 기르에메가 고맙다며 ‘나는 생당근을 좋아해’라고 나를 은근 놀리면서도 당근을 다 먹어줬었다.
그 후로 우리는 요리를 각자 따로 하게 되었다. 는 아니고 각자 먹을 음식을 가지고 식탁에 같이 앉아서 떠들고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저녁을 먹었다. 마트에서 세일하길래 사 왔다는 멜론, 석류를 같이 까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진지한 이야기도 같이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기르에메는 일본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일본 작은 마을에서 농경 생활을 하는 젊은 일본인 유튜버를 보면서 본인도 일본 작은 마을에서 농사짓고 조용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전공이 도시 계획이라며 머쩍게 웃곤 했었다.그러면서 내가 어쩌다가 독일에 오게 되었는지, 요즘 내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기르에메가 내 고민에 명쾌한 답변을 해줬다.
나는 독일이 좋고 독일에서 지내는 게 잘 맞는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다고 한국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라고 말을 꺼냈다.
그러자 기르에메는 네가 태어난 곳에 무조건 평생 살아야만 한다는 법은 없고 네가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곳에서 지금처럼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면 되는 거라고 응원해줬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던 나는 내 방식대로 살면 된다는 말. 참 쉬운 말 같으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가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기르에메는 혼혈아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자기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지금도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지금도 가끔 차별 대우를 당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르에메는 그건 자기 잘못이 아니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잘못이지 자기가 주눅들거나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다고 나의 가치가 진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고 너무 담담하게 말하는 기르에메의 말에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나름 내 멋대로 남 신경 안 쓰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말하는 거에 상처받고 화내고 혼자 꼭꼭 숨어버리려고 했다.
사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람들은 관심도 없을 텐데.
그동안 왜 그런 말들에 일일이 내 감정을 소모했는지 참 바보 같았다. 갑자기 마음 한편에서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타인에 대한 증오심이 조금씩 정리가 되는 기분이었다.
늘 부스스한 머리에 가디건을 입고 나에게 장난을 치던 기르에메가 의도치 않게 오늘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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